Common Methodological Confusions in Diabetes Care ( Language: Korean) PT2

5. 실제(實際)의 예와 가능한 개선책:

 

필자의 솔직한 생각으로는 이러한 현실이 쉽게 개선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서너 가지가 있다.

 

첫째로는 바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의 습관성이라는 것이 엄청난 慣性에너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당뇨에는 약이 없다”, “당뇨는 절대로 치료되지 않는다”라는 표현(表現)이 얼마나 넓게 퍼져있는가를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즉,`아직, 과학이 발달하지 않아, 약이 없는 것이고, 아직 과학이 발달하지 않아 치료가 되지 않는다’라는 생각을 수 십 억 명이 하고 있는 것이다.  수십 억 명이 당뇨의 원인은 과학이 발달하면 발견할 수 있고, 당뇨의 치료도 과학이 발달하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지, 병의 정의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식으로 정의(定義)하는 한,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여도, 원인을 발견할 수도 없고, 아무리 연구를 진행한들 해결책은 있을 수가 없다고는 아무도 생각치 않고 있는 것이고, 그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은 아주 어렵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두 번째의 이유는 기득권(旣得權)의 먹이 사슬 문제 때문에 위와 같은 개념상의 혼돈으로 발생하는 여러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기가 쉽지 않다. 소위 진리를 추구하는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기득권의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아니, 어느 면에서는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심각하다.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과학’이라는 단어의 정의가 실제로는 `과학자들이 서로 인정하는 것’으로 정의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끼리’사이의 `끼리끼리’가 `과학’으로 둔갑(遁甲)되어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물론 전부 그렇지는 않겠지만, 많은 경우가 그렇다는 것이다.  학계에 어느 정도 생활을 해보면 알겠지만,  `연구비를 타낼 수 있고, 유명 전문지에 출판이 되는 것’으로 `과학’이 정의되어있다. `내부에 논리적 모순이 없고, 뒷받침하는 증거가 있는 것’을 과학으로 생각하였다가는 큰 오산이다.  물론, 훌륭한 논문이 출판되어 우리들의 사고방식을 바꾸어주기도 하고, 실제적으로 생활에 큰 도움을 주는 경우도 물론 많다. 그러나,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우스꽝스러운 논문도 간단한 형식만 갖추면, 소위 커낵션으로 출판이 된다. 학계에서 발행하는 논문들을 평균 몇 명의 사람이 읽는가를 보면, 1.5명으로 나와있다. 수 천 명 수 만 명이 읽는 논문이 상당수 있어서, 그 평균치를 움직여 놓았을 것을 생각해보면, 아무도 안 읽는 논문이 대부분이라는 소리이다. 우리가 차분히 한 번 생각해보자, 그렇게 많이 출판되어 나오는 의학논문가운데, 정말 몇 %가 우리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준 논문인지…  현재, 의학계라는 곳의 서열(序列)은 잡지에 얼마나 많은 논문을 출판할 수 있는가하는 기준으로 짜여 있다.  그리고, 거기에서 쌓은 명성을 바탕으로 연구비를 더욱 타내는 것이 거의 종교처럼 되어있다.  연구비를 많이 타내는 교수 밑에는 연구진이 많이 몰리게 마련이고, 그러면, 그 인맥이 형성된다. 소위, 우리가 상아탑이라고 부르고 있는 학계도 인간이 살아가는 곳이 되어서, 이렇게 먹이사슬과 먹이사슬이 연결되어 엄청난 구조적 함정이 있는 경우가 많다.  내부의 논리적 일관성이 있고, 증거가 있고…이런 것을 기대하기가 어렵게 되어있다.

 

가령, 예를 들어서, “어느 간단한 요가 체조(體操)가 아니면 기공체조가 부작용도 전혀 없이 당뇨를 완치한다”는 것을 어느 과학자가 처음 발견을 했고, 통계적으로도 증명이 된다고 상상(想像)을 해보자. 그리고, 그 과학자가 그런 것을 논문으로 썼다고 상상을 해보자. 그러한 논문이 학계에 선풍(旋風)을 일으키고 의사들이 그런 것을 다투어서 환자들에게 소개할 가능성은 아주 작다.   그러한 논문은 죽었다가 깨어도, 소위 유명잡지에 출판이 될 수는 없다.  당연히 그 것을 발견한 사람은 과학자로서 경력을 쌓을 수 없다.  그 사람은 실없는 사람이 되고, 심지어는 부도덕(不道德)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 소위 학계(學界)의 그런 분위기를 잘 알고 있는 과학자들은 위와 유사한 발견을 하고도 발표(發表)를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는 다른 사람들이 혹시 `당신이 발견했는가?’ 물어오면 자기(自己)가 발견한 사실 바로 그것을 부정(否定)하는 사태도 필자가 아는 경우만 해도 왕왕(往往)있다.  당뇨에는 그런 식으로 발표되지 않는 아주 훌륭한  치료법 개선법 등이 아주 많이 있다.

 

반면, “요사이 유럽의 어느 큰 제약회사에서 실험하고 있는 어느 화학성분을 쥐에다가 실험하였더니, 용량의 3배를 주면 50%가 간(肝)기능에 이상이 생겨서 죽고, 용량의 5배를 주면 60%가 신장기능이 정지하여 죽는다.  그러나, Control그룹에 속해 있는 쥐는 47%가 죽었다. 따라서, 계속적인 연구가 더 필요하다” 식으로 자료를 들이대면, 어느 정도의 잡지에는 출판이 가능하다.  필자가 너무 실질적 경험적인 이득(利得)만을 추구하는 지 모르지만, 사람이 쥐가 아닐 진데, 필자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사람을 실질적으로 살리는 기공을 연구하는 앞의 연구가 쥐가 언제 죽는 가를 연구하는 뒤의 연구보다 값어치가 있을 것 같다. 이래저래 독성(毒性)이 있는 것을 알고 난 뒤, 즉, 이래 저래 사람에게는 쓰지 못할 것이 알려지고 난 뒤에, 쥐가 몇 마리 더 죽으면 어떻고 덜 죽으면 어떻다는 것인지 솔직히 필자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사업을 하고 있는 요사이 뿐 아니라, 필자가 학계에 종사할 적부터 그렇다.

 

따라서, 현재, 소위 학계에서 찾고 있는 방법은 무언가 당연히 부분적이고 분석이고 해부적인 접근을 계속 할 것이고, 통합적이고 실질적인 방법론은 출판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방법론이 학계에서 자리 잡을 가능성은 아주 작다. 따라서, 당뇨라는 병을 위에서처럼 정의하는 한, 현재의 학계의 분위기가 그런 식으로 진행되는 한 당뇨라는 병에 관해서는 영원히 답을 찾지 못할 것이다. 현실이 그렇다.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거기다가, 의료계의 연구라는 것이 통계를 전공하는 사람이 보면 문제점있는 통계자료를 들이대는 경우가 태반(太半)이다. 소위 자유도라는 것이 거의 마이너스 무한대의 통계자료를 의미한다.  그런 통계자료를 가진 연구들도, 연구비를 더 타낼 수가 있고 유명 과학전문지에 출판이 되면 그것으로 족하다. 이유는 기득권의 문제이다.

 

현재, 당뇨라는 병과 관련되어 직접 간접으로 지출되는 비용은 미국에서 년 1500억불정도로 추산된다. 어느 나라 건간에 당뇨에 관련하여 직접 간접으로 지출되고 있는 것은 그 나라의 상업용건물의 임대료의 총계와 거의 비슷한 우연의 일치가 있다. 이렇게 엄청난 돈이 오고가는 곳에는 당연히 기득권이 형성되어있다. 이 것보다 훨씬 작은 돈이 오고가는 곳에서도 기득권을 가진 사람과 그것에 도전을 하는 사람과의 투쟁은 아주 치열하게 되어있다. 당뇨에 관해서는 위의 년 1500억불과 관련하여, 엄청난 기득권과 먹이사슬이 형성되어있다. 이렇게 형성된 기득권의 이익과 충돌하면 그 기득권으로부터의 엄청난 저항을 받게 되어있다. 현재, 당뇨라는 병의 정의를 기능적 정의를 중심으로 재정의 해야된다고 누군가가 주장을 한다하더라도 그것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의 거의 전무(全無)하다. 왜냐하면 당뇨를 그렇게 지수를 중심으로 정의하고 있는 관행을 중심으로 형성된 먹이사슬이 너무도 엄청나기 때문이다.  `당뇨Establishment’라고 부르는 거대한 집단의 힘은 군수사업의 로비력의 수 백 배의 힘을 가지고 있는 Establishment라고 생각하면 상상이 갈 것이다. 그래도, 군수산업(軍需産業)은 그 로비와 기득권을 일반사람들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 폐해(弊害)가 사실은 한정되어있다.  어느 정도를 넘으면 여론의 직격탄을 맞게 되어있는 것을 본인들이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뇨Establishment 는 그렇지가 않다. 최근에 와서야, 한국에서도 의료계 파업이니 의료대란이니 하는 난리를 겪으면서, `의사라는 직업도 일종의 집단이익에 의해 움직이는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사회 전체가 그 분들의 기본권을 생존권을 침해하면 노동자들이 움직이는 것과 전혀 마찬가지의 방법으로 저항을 하는 것을 국민들도 알게 되었다. 그 전에만 하더라도, “생명을 지켜주는 인술을 베푸는 고마우신 선생님들, 돈도 필요 없으시고 오직 환자를 고치겠다는 사명감만으로 움직이시는 선생님들”로 모두들 생각해왔던 것이다. 당뇨Establishment는 `인술을 베푸시는 고마운 선생님들 가운데에서 특별히 공부를 많이 하신 선생님들’이기 때문에 이들이 어떠한 먹이사슬과 연결되어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엄청난 불경(不敬)의 죄에 해당되기 때문이고, 먹이사슬을 깨부술 정도의 인식(認識)과 발상(發想)의 전환(轉換)과 정치적인 힘의 동원(動員)이 의사 분들 자신과 일반 환자들 사이에서 자연 발생한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상하게 오랫동안 계속되는 오해에는 그 오해로부터 이익을 취하는 그룹이 있고 그 위치를 방어하는 메카니즘이 있게 마련이고, 피착취그룹의 무지와 정치의식의 미숙(未熟)이라는 특징이 있다.  당뇨병의 자체의 잘 못된 정의를 깨버리고 기능적으로 분화시켜서 다시 정의하여, 그를 중심으로 의료체계를 재건(再建)하자라는 의견이 가까운 장래에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아주 작다. 필자가 보기에는 아마, 달성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당뇨라는 병이 기능적으로 재정의 되면서 치료 가능성을 기준으로 분화되어 나갈 가능성은 과학적인 이유, 의학적인 이유(理由)보다는 정치적인 이유로 경제적인 이유로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오로지 가능하다면 몇 명의 용감한 의사 분들이 당당하게 전체 당뇨 Establishment를 대상(對象)으로 과감하게 도전하는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 의사 분들의 연구가 실제로 더 높은 질을 나타내고, 이 의사 분들이 실제로 돈도 더 벌고, 이 의사 분들은 도덕적으로 더 존경할 만한 분들이 되는 수밖에 없다… 어려운 일이다. 의사 분들이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거나, 능력이 근본적으로 결핍되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현재, 한국, 일본, 대만은 의료보험체계와 의약분업관련법규가 그러한 논의가 의사 분들 사이에서 진행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어있다. 의사 분들이 어떠한 부도덕한 의도(意圖)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의료체계가 의사들이 그런 식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생존하지 못하도록 몰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2001년 2월 검찰의 한 발표가 있었다. 약 1, 000 명 정도의 의사 분들이 제약회사들로부터 리베이트를 받는 것이 검찰에 의해 발각되었고, 그 중의 죄질이 나쁜 80 명 정도만을 입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발각되고 입건된 의사 분들은 한결같이 그렇게 리베이트를 받는 것이 `관행’임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리베이트를 받는 것은, 누구나 다하고 있고, 예전부터 해왔고, 앞으로도 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이런 분위기(雰圍氣)하에서, `당뇨라는 것의 올바른 정의(定義)가 무엇일까?’와 같은 배부른 공상(空想?)을 할 여유가 의사 분들에는 현실(現實)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당뇨약도 리베이트를 받아야하고, 그런 관행이 발각되지 않아야 하고… 하여간 의료업계의 내용을 보면, 기가 찬다. 제약회사들은 약국에서 6개월 9개월 기한의 어음을 받는 것이 관행으로 되어있고, 의사들의 해외골프뒷바라지를 해야되는 것도 관행으로 되어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양심적인 아니 `관행을 따르지 않는’ 의사 분들도 많이 계신 것을 잘 알고 있다. 필자는 그런 관행을 따르지 않는 분이 많은가, 아니면 따르는 분이 많은가를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공무원들이 그런 일을 하여서는 당장 감옥에 갈 일, 회사원들이 했다가는 당장 파면되고 감옥에 갈일, 즉, 형사상의 背任죄에 확실하게 해당하는 일들이 `仁術’을 베푸시는 분들 사이에서는 慣行이 되고 있다는 것이 약간은 어리둥절할 뿐이다.  의사 분들이 제약회사로부터 받는 rebate가 관행이라고 말하고 있을 때에 필자가 느끼는 배신감은 사실 정치인들이 뇌물을 받은 것이 드러났을 적에 `대가성이 없는 순수 정치자금’이었다고 주장할 적에 느끼는 불쾌감에 결코 덜하지 않다.  한국에서는 환자의 챠트(진료기록부)를 환자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따라서, 다른 병원에 가면 처음부터 모두 검사를 모두 다시 시작해야한다. 치료비는 비현실적으로 낮고, 검사비는 보험에 포함되지 않고 때문에 검사비에서 수익을 올려야하는 의사들끼리 서로 `관행적’으로 묵계가 있다고도 들었고, 또, 챠트 자체가 다른 사람에게는 도저히 보여줄 수 없을 정도로 不實하게 기재(記載)되어있다고도 들었고, 챠트가 공개되었다가는 많은 의사 분들이 고발고소를 당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더 좋은 약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리베이트를 받은 제약회사의 약을 처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들었고, 계속해서 같은 처방을 해주면 계속해서 진료를 받지 않으니, 사실 계속해서 같은 처방을 하는 것을 알려줄 수가 없다고도 들었다. 모든 의사 분들이 전부 그렇다고 주장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 그런 엄청난 행위들이 `극소수의 예외적인 변칙적 행위’가 아니라 의료계의 `관행’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고, 그런 이야기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지는 현실이 상당히 우려된다는 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의사시험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호텔에 합숙훈련을 하여야하고, 합숙훈련의 목적은 집중적으로 공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시험문제가 비밀리에 사전에 유출되는 것을 기다리기 때문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대학수능시험의 경우 그런 일을 하였다가는 아마 나라가 발칵 뒤집힐 것이다. 그러나, 소위 `인술’ 행한다는 극소수(?) 의사 분들 사이에서는 이런 일들이 `慣行’으로서 수 십 년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너무 의료계의 비리를 針小棒大하고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혈연 또는 학연을 통하여 개인적으로 親分이 없는 경우에 의사에게 진료를 받기가 겁난다는 느낌을 받은 사람은 과연 필자와 같은 극소수의 사람들뿐일까? 필자의 주위에는 유난히 의사 분들이 많다. 그 분들 모두가 착하고 지극히 양심적인 분들이다. 그리고, 의과대학에 가시는 분들도 모두들 심성이 착한 분들인 것을 필자는 잘 알고 있다. 이렇게 착하고 착한 사람들을 집단범죄자로 만들어 놓는 법률/관행/오해…이런 것들을 깡그리 부수어 놓기 전에는 `당뇨병의 정의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심각하게 논의할 수 있는 여건(與件)이 형성되지 않게 되어있다.

 

미국이라고 事情은 별 반 다르지 않다. 미국의 일반의들은 일년 평균 약 $16,000정도의 리베이트를 각종 형태로 제약회사들로부터 받는 것으로 한 통계는 말하고 있다.  단지 미국에서는 환자들이 워낙 재판을 많이 걸기 때문에, 의사들이 훨씬 더 조심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American Medical Association이라는 가장 강력한 로비력을 갖춘 단체가 의료 관련 법을 완전하게 조정하고 있어서, 또, 의과대학의 정원을 컨트롤하고 있기 때문에, 의사들의 과잉공급현상이 발생하는 것을 자체예방하고 있을 뿐이다.  하여간, 한국, 일본, 대만의 경우,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또, 이러한 慣行가운데에,  당뇨Establishment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의사 분들이 많을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는다.  법규와 행정환경, 그리고 시장환경이 그런 분들이 나타나기에는 너무나 문제가 많은 것이다. 단지, 그런 현실이 약간은 서글픈 것이다.

 

6. 비관적인 예측 (1)

 

하여간, 당뇨병에 관한 한, 병의 정의 자체를 바꾸지 않는 한 계속해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뇌수술, 사람을 더욱 책임감 있게 만드는 유전자를 찾는 것과 같은 愚를 계속 범할 것이다. 단지, 출판이 되고, 연구비를 탈수 있다는 웃기지도 않는 과학성(?)이 이를 보호할 것이고,  먹이사슬의 受益者들이 든든하게 버텨주는 한 이러한 愚가 愚라고 지적되는 일도 별로 없이 당뇨산업의 파티는 계속될 것이다.  묘하게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기가 힘들게 만들어 놓은 당뇨병의 정의, 그리고, 요상하게 만들어 놓은 법규, 그 속에서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그 나름대로 괴로워하는 의사들, 그리고, 제약업계의 부조리와 먹이 사슬 속에 환자들만 멍이 들고 죽어나가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미국과 유럽에서는 연구비가 수 십 억 불씩 투자된 독성강한 화학 제제가 출현할 것이고, 환자들은 거기에 큰 희망을 가졌다가 몇 년 있으면 부작용 때문에 사람이 몇 명 죽었는데 제약회사가 숨겼다고 보도가 되고, 제약회사들은 환자들과 법정 밖에서 돈을 주고 타협(out of court settlement)하고…하는 典型的인 사건들을 계속하여서 반복할 것이다. 제약회사의 입장에서 보면, 그러한 제품의 `판매허가를 FDA로부터 얻었다’라고 발표하면서 얻는 주식의 市勢差益이 연구개발비와 위에서 말한 Out-of-court settlement 비용, 그리고, 의사들에게 주어야하는 Rebate비용보다 많기만 하면, 아무리 독성이 강한 약도 개발과 판매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거기다가, 자기들보다도 더 좋을 가능성이 있는 약들은 미리 투자라는 명목으로 그 회사자체를 사버려서, 더 좋은 약들이 시장에 나오지 않도록 萬全을 企해둔다. 필자가 경영하는 회사에서는 엘레오틴이라는 생약성분의 당뇨식품을 계발하여 판매하고 있는데, 세계의 유수 제약회사의 사람들이 접근하여와서, 필자를 Buy Out(돈 많이 줄 터이니 회사를 팔고 나가라는 것)하겠다고 제안을 해왔다. 물론, 상당한 금액 ($2500 만 불) 을 제시하였기 때문에, 필자가 마음이 크게 動한 바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이 사람들은 원래 노는 물이 rebate로 해가 떠서  rebate로 해가 지는 사람들이 되어서 그런지, 그 담당 간부가 자기 개인에게 rebate를 50%를 주어야하는데, 스위스은행에 입금을 하여야된다고 요구를 하여와서 필자가 아주 불쾌해하면서 거절한 경험이 있다. 이런 일이 알려지면 필자가 살고있는 카나다에서는 감옥에 간다.  이 사람들이 생전에 그런 일이 없다가 우리 회사에 대하여서만 예외적으로 그렇게 하였다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화를 내는 필자에게 이 사람들은 `관행이 다 그런 것’이라면서 오히려 필자를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이었다.  알려지면 감옥에 가는 일들이 `관행’인 사회… 정계나 건달들의 세계가 바로 그런 세계인데, 그런 세계에는 근처에 가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하나 뿐이 몸이 아플 경우 가지 않으면 안되는 장소들에도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이런 `관행’ 이런 부조리가 蔓延해 있다는 것에 인간적인 悲哀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일부 극소수의 행위를 필자가 침소봉대하고 있을 것이라고 필자 자신을 달래보면서 말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약의 부작용으로 죽는 사람과 약의 부작용으로 병원에 입원하는 사람이 전체 죽는 사람과 전체 입원환자 중의 4위이다. 약의 부작용으로 죽는 사람은 년 100,000명이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무슨 약의 부작용이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 있는 확실하고 급성(急性)의 경우만을 이야기한다. 당뇨약처럼 오랫동안 복용하여 서서히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은 이런 통계에 잡히지도 않는다. 필자가 생각해 보건데, 만성(慢性)의 약물부작용까지 합치면 그 숫자가 위에서 나타난 숫자의 수 십 배는 될 것이다.   누구든지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자주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읽지는 않는다. 그러나 히포크라테스선서의 가장 중요한 항목이 “Don’t Harm the Patient”이다. 여기에 두 가지 선택이 있다. 독성이 있는 것이 분명히 확실한 화학제품이 있다. 또 하나는 독성이 없다고 주장하는 천연생약제품이 있다. 상식적으로는 당연히 천연생약제품을 쓸 것이다. 아니,  백 번 양보한다 하더라도, 실제로 그런가 확인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왜냐하면,, 남은 대안은 엄청난 毒性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면 상당한 구조적 문제가 있는 것이다. 나중에 다른 기회에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할 기회가 있겠지만, 유전자치료방법으로는 절대로 성인형 당뇨를 고칠 수 없다고 본다.  아마 당뇨뿐 아니라, 다른 모든 지수형 성인병들이 다 그럴 것으로 본다. 유전자치료방법의 효용은 몇몇 유전병을 조기 진단하여 약간의 개선을 하는 것에 그칠 가능성이 많다고 본다. 지수형 성인병에 관해서는 유전자적 접근법으로서는 조기 진단조차도 어렵다고 본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이유로 인해, 유전자 쪽으로 아마 수 백 억 불을 던져 넣을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출판이 되고, 돈이 벌리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도, 결나올 결론은 빤하다: “계속 연구를 더 해야하니 연구비를 더 투입해야된다.”외에는 결론이 있을 수가 없다. 무한복잡계에서 지수를 중심으로 병을 정의했기 때문에 그렇다.  진정한 지식의 진보가 없어서 그럴 수도 있고, 학계 업계의 먹이사슬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하여간, 당뇨라는 병의 정의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빨리 받아들이지 않으면,  수 십 억불 수 백 억불씩 연구비를 퍼부어도 헛발질이 될 수밖에 없고, 그런 헛발질이 계속되고 있는데는 무언가 사람을 씁쓸하게 만드는 무슨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